. 몬트리올의 두 번째 교회시대 (1760~1867)

 

1. 영불전쟁과 그 이후

2. 승승장구하는 카톨릭 교회.

3. 몬트리올에 처음으로 세워진 프로테스탄트 교회들

4. 몬트리올의 프로테스탄트 교인들 이야기.


5. 몬트리올 주변의 불어권 지역으로 확산되는 선교 이야기

   

오늘은 지난 시간에 연재했던 몬트리올 주변에 확산되어지는 불어권 선교에 대한 이야기에 이어지는 뒷 부분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불어권 카나다 선교회 French Canadian Mission Society

 

몬트리올과 그 근교의 불어권 주민들의 복음화를 위해 불어권 카나다 선교회” French Canadian Mission Society 18394월에 몬트리올에 세워졌습니다. 그랑린 Grande Ligne 선교회가 몬트리올의 남쪽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해왔다면, 불어권 카나다 선교회 FCMS 는 몬트리올 북쪽에서 시작되었지요.

 

그랑린 선교회와 비교하면 평신도 중심적이었으며 감리교, 장로교, 회중교회, 침례교와 영국국교회등 대부분의 프로테스탄트 교단들이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회중교회 목사로서 존경받던 헨리 윌키스 Henry Wilkes 목사를 중심으로 몬트리올에서 유력한 평신도 지도자들이 이 선교회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라신 카날 Lachine Canal 건축자이며 몬트리올 뱅크 BMO 회장이었던  존 레드파드 John Redpath 가 이 선교회에 참여했습니다.

또한 철도회사 사장이었으며 한 때 몬트리올 시장이었던 제임스 페리어 James Ferrier, 벙어리들을 위한 학교를 세웠던 조셉 맥케이 Joseph Mckay 와 멕길대학교 학장이었던 윌리엄 도슨 William Dawson 등 성공한 사업가와 정치인들과 교육자들이 불어권 선교를 위해 참여를 하여 후원뿐만 아니라 활발하게 활동을 했습니다. 

 

존 윌리엄 도슨 John William Dawson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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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220pixel, 세로 304pixel

   

노바스코사의 픽토우에서 태어난 존 윌리엄 도슨(John William Dawson, 1820-1899)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리학자로서 몬트리올 맥길 대학(McGill University)에서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신실한 장로교인으로서 불어권 카나다 선교회를 위해 많은 후원을 했습니다. 한번은 과학자와 평신도 신학자로서의 탁월함 때문에 도슨은 1878년에 프린스턴 대학으로부터 지질학 교수직을 맡아달라는 매우 매력적인 제안을 받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유혹을 느꼈지만 결국 다음과 같은 말로 프린스턴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나는 한줌의 ....프로테스탄트 교인들이 퀘벡 주를 악몽과도 같은 교황권지상주의와 중세의 무지에서 구해내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마당에 나를 얽매는 요청을 두려워한다.”

    

그는 진실된 크리스찬 지리학자로서 다윈의 진화론을 반박하는 책들도 여러권 저술하면서 당시 몬트리올의 기독교 선교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후에 그의 이름을 따서 도슨 칼리지가 몬트리올의 다운타운에 세워졌습니다.

  

선교의 사명이 투철한 교회들과 윌리엄 도슨같은 열정있는 평신도들의 후원으로 '불어권 카나다 선교회'는 복음 전도자들을 훈련시키며 열심히 불어권 선교를 위해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당시 불어권 지역 선교에 관심을 갖고 있던 스위스까지 가서 퀘벡 복음화를 위해 훈련된 선교사를 요청하기도 하였습니다.

 

☞ 불어권 카나다 선교회에 의해  교회가 세워지는 과정

 

후원받은 후원금으로 복음 전도자들을 훈련하여 집집마다 방문하며 복음을 전하게 했습니다. 이들은 영혼구원의 열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긍정적인 신앙을 소유했으며, 건강한 신체를 갖기 위한 훈련도 받았습니다. 어떤 전도자들은 걸어서 사역을 했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말을 타며 사역했습니다.

 

당시에 글을 읽거나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성경을 전하며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이 당시에 프로테스탄트로 회심한 카톨릭 교인을 중심으로 한 불어권 사람들이 이들을 통해 회심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교회가 세워지는 과정은 보통 4단계를 거치게 되었습니다. 첫째로 복음전도자들이 성경을 나눠주면서 그 지역에서 들어갑니다. 두번째로 일대일 혹은 그룹 성경공부를 합니다. 세번째로 퀘벡 주민들이 카톨릭 미사 참여를 그만둡니다. 마지막으로 회심자들을 중심으로 교회를 세우고 사역자를 파송하는 단계를 거쳤습니다.

 

영국 식민 정부는 카톨릭 불어권 학교들과 프로테스탄트 영어권 학교들의 통폐합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카톨릭 사제들의 반대로 무산이 되기도 했습니다. 통폐합이 되면 자신들의 언어와 종교를 잃어버리게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자신들의 언어와 종교를 단단히 보호하려고 했습니다.

 

당시 영어권에서는 퀘벡이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언어 문제, 민족 문화 문제보다는 종교적인 문제가 더 크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영국과 스코틀랜드계와 미국계의 복음주의자들이 합력하여 활발하게 퀘벡과 몬트리올 복음화에 앞장서게 되었습니다.

                                                                                                                .........   계속